1980년~1989년

1980~1989년 연혁 사진, 결핵 구조활동 및 30주년 기념식 등의 사진 8장을 한데 붙여 놓았다.

크리스마스 씰 모금의 재도약 및 씰 콘테스트 수상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대한결핵협회 발전을 위한 가장 고무적인 일은 1975년 이후 상징적인 규모로 묶여있던 크리스마스 씰 모금운동이 규제를 벗어나며 재도약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1980년 200,000,000원으로 모금 목표액을 증액한 이후 꾸준히 목표액을 증액해나갔으며 그와 동시에 실제 모금액 역시 목표액을 상회하며 결핵사업의 주요 재원으로 확고한 위치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크리스마스 씰 모금운동이 크게 신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자율모금에 의한 꾸준한 홍보, 경제수준 향상, 조폐공사 인쇄, 최고 작가들의 심혈을 기운인 디자인 도안 등에 힘입은 것이었습니다.

특히, 『탈춤』을 소재로 디자인을 작업한 1987년 크리스마스 씰의 경우, 1937년 『팽이 치는 소년』을 작업했던 운보 김기창 화백이 50년만에 다시금 씰 그림을 그리며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1985년 『한국의 탈』 크리스마스 씰은 IUATLD(International Union Against Tuberculosis and Lung Disease, 이하 IUATLD) 세계 크리스마스 씰 콘테스트에서 3위로 입상하였으며, 이후 1986년도 『한국의 연』 2위 입상, 1988년 『농악놀이』 1위 입상 등 해외에서도 우리나라 크리스마스 씰의 우수성을 입증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2014년 『백두대간에 자생하는 고유 동식물』 2위 입상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입상하며 우리나라 크리스마스 씰 디자인의 우수성은 현재까지도 인정받고 있습니다.


세계 크리스마스 씰 전시회와 도감 발행
창립 35주년을 맞이하던 1988년, 대한결핵협회는 세종문화회관 전시장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 크리스마스 씰 전시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발행되었던 크리스마스 씰은 물론이며, 해외 여러나라에서 발행된 크리스마스 씰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회라는 점에서, 일반 국민 뿐 아니라 언론에서도 큰 관심을 표했습니다. 예상 외로 많은 분들이 관람을 했으며 현장에서는 크리스마스 씰 모금도 병행되었습니다. 나아가 1989년에는 『세계 크리스마스 씰 도감』을 발행하였는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연도별 씰을 집대성하였습니다. 이같은 도감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던 것으로서 각국 결핵협회로부터 큰 호평을 받았으며 여러 곳에서 추가 요청을 해왔습니다.


BCG 생산업무 인수
1966년 국립보건원과 협정을 체결하며 시작된 결핵백신 BCG 셍산업무가 1987년을 지나며 대한결핵협회로 이관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결핵연구원 부지에 BCG 생산동을 신축하였으며, 이를 통해 국립보건원의 BCG 생산량 보다 훨씬 양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립보건원에서 BCG를 생각하던 시절, 전국 소요량의 절반 가량만 생산이 가능했기에 부족분은 수입을 해왔었으나, 대한결핵협회로 이관된 후로는 연간 1,500,000명 분의 BCG를 생산하며 전량 자급자족이 가능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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