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1959년

1945~1959년 연혁 사진, 광복 이후 6.25전쟁 당시의 구조활동 모습 흑백사진 4장을 한데 붙여 놓았다.

8•15 광복에서 6•25 동란까지의 결핵 상황

8•15 광복 이후의 우리나라 결핵 사정에 대한 명확한 통계자료는 없으나, 태평양 전쟁에 따른 궁핍, 영양실조, 강제노역 등으로 인하여 결핵이 만연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상이군인요양소가 1개 병동과 부속 건물로 증축되며 1946년 국립마산요양원으로 개원했던 사실을 통해 그 당시 결핵이 얼마나 만연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후, 1948년 인천적십자요양원, 1949년 마산교통요양원 등이 속속 개원되었으며, 이같은 전문 의료시설에 의해 우리나라 결핵 치료체계가 확립될 수 있었던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6•25 동란 발발 후에는 진해해군병원 결핵병동, 국립신생결핵요양소, 공군병원 결핵병동 등 전국의 결핵치료기관이 마산으로 집결하며 우리나라 결핵병학 수준을 한층 향상시켰습니다. 이후, 이러한 결핵치료기관을 이끌었던 사람들이 대한결핵협회 창립에 지대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이들은 대한결핵협회 창립 초기, 협회의 회장, 부회장, 이사, 지부장 등 주요 직책을 맡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항결핵단체인 대한결핵협회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합니다.


『보건세계』 창간
국내 최초의 결핵계몽지로서 60여년간 꾸준히 발행되고 있는 『보건세계』는 지난 1953년 마산요양소에서 투병생활을 하던 김대규에 의해 창간되었습니다. 결핵에 대한 무지를 깨우고 올바른 결핵지식을 알리기 위해 1953년 창간된 『보건세계』는 그해 11월 6일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고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1954년 12월, 발행인 김대규가 『보건세계』 판권을 대한결핵협회로 이양하면서 본회에서 발행을 전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한결핵협회 창립
6•25 종전 이후, 우리나라에는 조선결핵예방협회, 한국결핵협회, 기독교의사회, 결핵대책위원회 등 다양한 항결핵 조직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6•25 동란을 겪으며 우리나라에 만연해진 결핵을 퇴치하기 위하여, 강력한 단일 단체가 필요하다는 것에 뜻을 함께하였으며 1953년 11월 6일, 발기인 창립총회를 가짐으로써 국내 최초의 민간 항결핵단체인 대한결핵협회가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대한결핵협회의 창립은 단순한 창립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1930년대 캐나다 선교의사인 셔우드 홀에 의해 주도었던 국내 결핵퇴치가 1940년대 일본결핵예방회 조선지방본부를 잠시 거친 후, 드디어 우리민족의 힘으로 세운 진정한 겨레의 민간단체라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1953년 11월 6일, 세브란스 의대 소강당에서 개최된 창립총회를 시작으로, 대한결핵협회는 명실상부 우리나라의 결핵퇴치를 책임지는 단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창립총회 직후인 11월 7일 서울대학교 강당에서 제1차 결핵학술대회를 개최하였으며, 결핵으로 요양 중이었던 상이군인 대표가 손수 만든 객담통 및 그것을 팔아서 얻은 이익금을 본회에 기부해왔습니다. 이는 당시 수많은 결핵환자들이 국내 결핵퇴치를 이끌어 갈 강력한 단일단체의 창립을 얼마나 갈망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몇일 후인 11월 23일 보건부의 정식 설립허가도 받았으며 이듬해 1954년 1월에는 국제항결핵연맹과 회원국에 대한결핵협회의 창립을 알림과 동시 그해 9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제5차 국제항결핵연맹 총회에도 참석하며 정규 회원국으로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씰 발행
1932년 셔우드 홀에 의해 크리스마스 씰이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행된 이후, 수년간 크리스마스 씰 모금은 유지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한 셔우드 홀 강제 추방, 6•25 동란 등을 겪으며 그 명백만을 유지해왔습니다. 마침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며 1953년부터 다시금 크리스마스 씰이 발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한결핵협회가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했던 1953년의 모금은 170,000여원에 불과했으나, 1954년도부터는 국내 뿐 아니라, 미8군, 미국 본토 등에서도 모금에 참여함으로서 모금 총액이 390,000여원을 넘어서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크리스마스 씰 모금액을 기반으로, 1955년 부속진료소를 개설하며 본격적인 환자진료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본부 집행기구와 지부 창설
1954년부터 크리스마스 씰 모금액이 증가하면서 대한결핵협회 역시 집행기구를 확대하고 본격적인 결핵퇴치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춰가기 시작했습니다. 1955년부터 대구에 결성한 경북지부를 시작으로, 같은 해 전남지부, 1956년 서울지부와 충남지부, 1957년 경기지부, 강원지부, 경남지부, 제주지부, 1958년 충북지부와 전북지부 등이 연이어 창설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대한결핵협회는 전국 단위 결핵퇴치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진료사업 착수
결핵치료를 요하는 환자는 많았으나 치료기관은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 대한결핵협회는 1955년 본부 산하에 부속진료소를 개설하며 결핵환자 진료사업을 착수하였습니다. 개설 초기에는 대한결핵협회 본부에서 부속진료소를 운영하였으나 서울지부가 결성됨에 따라 1957년 부속진료소 운영을 서울지부로 이관합니다.

이후, 효과적인 결핵환자 진료를 위한 부속진료소 증설이 필요함에 따라 1957년 경남지부 부속의원, 1958년 경북지부 부속진료소, 1960년 전남지부 진료소 등이 설립되며 전국 4개 도시에서 결핵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진료소가 개원하게 됩니다. 

타 지역에 비해 유독 서울지부 부속진료소가 크게 성장하였으며, 연간 치료 인원수를 살펴보면 설립 연도인 1955년 8,400여명, 1956년 12,800여명, 1957년 16,000여명, 1958년 43,300여명, 1959년 62,100여명으로까지 증가하였습니다.


X-선 집단검진 시작
결핵환자 발견을 위한 X-선 집단검진사업은 대한결핵협회 창립 3년 뒤인 1956년부터 착수되었습니다. 대한결핵협회는 초창기 X-선 장비를 갖추지 못하였기에 보건사회부, 미경제협조처를 비롯한 해외 지원단체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이들 기관을 통해 지원받은 X-선 장비 3대를 시작으로 집단검진사업에 임하였으며 1956년 10월 처음으로 검진을 실시하게 됩니다. 첫해 서울시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50,000명을 목표로 시작한 집단검진사업은 이듬해 경기, 강원, 충남 등으로 확대되었으며 그 대상 역시 일반주민, 공무원 등으로 넓혔습니다 이에 따라 검진실적은 전년 대비 2배가 넘는 105,600여명에 달하였습니다. 이후, 1958년부터는 후생시설 수용자로까지 검진 대상을 확대하며 전국 총 184개소에서 194,100여명에 달하는 인원을 대상으로 X-선 결핵검진을 실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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