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이전

1945년 이전 활동사진, Sherwood Hall과 우리나라 초창기 결핵협회 활동 관련 흑백사진 4장을 한데 붙여 놓았다.

항결핵운동의 선구자 ‘Sherwood Hall’

우리나라에 근대적 결핵시설이 설립된 것은 1928년 해주구세병원장으로 있던 캐나다 출신 선교의사 Sherwood Hall(이하 셔우드 홀) 박사에 의해서였습니다. 태어나서 17살까지 한국에서 자랐던 셔우드 홀은 유년시절 수많은 한국사람들이 결핵으로 삶을 마감하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훗날 의사가 되어 결핵으로 고통받는 한국을 위해 일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토론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된 셔우드 홀은 해주구세병원장으로 부임하면서 다시금 한국과의 인연을 맺습니다.

결핵퇴치를 위해 셔우드 홀이 설립한 해주구세요양원이 개원하던 날, 그는 “나는 큰 기쁨을 맛보았다. 이는 조선의 고통 받는 결핵환자들을 위해 새로운 시대의 막이 열리는 극적인 순간인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후 해주구세요양원은 한국에 만연하던 결핵을 치료하고 전염을 방지함과 더불어, 많은 이들에게 결핵에 대해 알려주는 곳이 되었습니다.

셔우드 홀은 외국의 크리스마스 씰 모금운동을 한국에서도 전개하기 위해 1932년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누구보다 한국인의 처지와 마음을 아는 셔두으 홀이었기에, 임진왜란 때 일본선단을 무찌른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으로 크리스마스 씰을 도안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불허로 인하여 부득이 남대문으로 변경하였습니다. 이후, 셔우드 홀이 스파이 누명을 쓰고 강제 추방될 때까지 한국의 크리스마스 씰은 9년간 발행되었습니다.

1940년 국외로 추방당한 셔우드 홀은 인도로 이동하여 황막한 사막에 요양원을 건립하고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인도인들에게 많은 사랑과 인술을 베풀었습니다. 1963년 은퇴 후 벤쿠버에 머물던 셔우드 홀은 1984년 대한결핵협회의 초청으로 한국을 재방문하였으며, 일정강점기에 한국에서 결핵퇴치를 위했던 공로를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과 명예서울시민증을 받았습니다. 이후, 1991년 98세를 일기로 벤쿠버에서 타계하였으며, 그의 유언에 따라 한국땅 양화진에 안장되었습니다.

이후 1953년 대한결핵협회는 우리나라 근대적인 결핵 의료를 도입한 셔우드 홀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창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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